대통령께서 이 글을 읽으실 리도 없겠지만 답답해서 한 마디 더 합니다.
대통령의 아픔을 이해합니다.
젊은 시절 불행하게 부모를 모두 떠나보낸 그 아픔과 슬픔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식으로서 부모님을 그리워하고 사랑하는 그 마음도 알 것 같습니다.
그러나 역사 교과서를 국정화 하려는 그 마음이 효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것이 효행은 아닐 겁니다.
순임금은 대표적인 효자일 것입니다. 많은 성현들이 소리 높여 그의 효행을 칭송했습니다. 순임금의 아버지는 고수라는 사람입니다. 고수는 눈먼 사람이라는 뜻이니 아마도 눈먼 노인네였을 것입니다. 효녀 심청의 아버지가 봉사였던 것이 우연이 아닙니다. 효녀 심청의 형상은 효자 순임금의 형상과 무의식적으로 맞닿아 있고 고수와 심봉사 또한 그러합니다. 눈이 멀었다는 것은 단순히 육신의 눈이 멀었단 것일 뿐만 아니라 마음의 눈까지 멀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의 눈이 멀지 않았다면 어떻게 차마 딸을 팔아먹을 생각을 할 수 있었을까요. 고수도 친아들인 순임금을 여러 번 죽이려고 시도했습니다. 마음의 눈이 멀지 않았다면 차마 어찌 아들을 죽일 생각을 할 수 있을까요.
고수는 그냥 완악한 사람으로만 알려져 있습니다만 아마 모르긴 해도 참으로 악독한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악행이 어느 정도였는지 지금은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순임금과 같은 효자를 낳았는지 의아하기는 하지만 순임금의 선한 효행이 너무나도 위대했기 때문에 아버지의 악행이 도리어 빛을 잃을 정도였습니다.
순임금은 아버지를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아버지의 악행을 되풀이하지도 않았고 아버지의 악행을 변호하지도 않았습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아버지를 위하는 길이 아니었음을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를 선행으로 인도하고 개과천선하게 하는 것이 진정한 효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악독했으나 아버지를 공경하면서도 순임금은 묵묵히 선행을 실천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순임금은 위대한 효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아버지 고수의 악행을 거론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눈먼 아버지를 따라서 내 눈도 같이 멀어버리는 것이 효행은 아닙니다. 그것은 불효입니다. 마음의 눈이 멀어버린 아버지의 눈을 뜨게 해드리는 것 그것이 진정한 효행일 것입니다.
아버지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아버지의 과오를 강하게 옹호하는 것은 아버지의 업적마저도 탈색시키고 아버지의 오명을 오히려 더욱 드러내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그것은 친일매국노의 후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조상들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변호하는 것은 조상들의 어둠에 더 짙은 어둠을 드리우는 것입니다. 조상들의 잘못을 되풀이하지 않는 것 오로지 선한 행동으로 조상들이 드리운 어둠을 빛으로 걷어내는 것 그것이 참된 효행이 될 것입니다.
저는 효도는 그렇게 하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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