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들 인문학이 쓸모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과연 세상에 쓸모없는 학문이 있기나 한 것일까요?
인문학을 하려면 기본적으로 언어를 이해하는 힘, 텍스트 자체를 이해하는 힘, 텍스트의 바깥 즉 콘텍스트를 이해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이것을 기반으로 인문학은 생각하고 연결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힘을 기릅니다. 인문학 공부는 생각하고 연결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공부입니다. 그런데 요즘 학교에서 배우는 인문학은 단순히 단편지식을 암기하는 공부에서 끝나고 주체적으로 생각하고 연결하며 소통하는 것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습니다.
좀 배웠다고 하는 사람들도 자기 언어를 주체적으로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들은 대부분 세상의 언어에 지배되어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언어의 본질을 이해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복잡하고 심오한 텍스트를 이해하는 힘이 매우 약합니다. 이런 것을 문해력이라고 하는데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은 예전 학생들에 비해 심각할 정도로 퇴보하고 있습니다. 심지어 외국에서 공부한 지식인들 중에서도 한국어 문해력이 부족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텍스트뿐만 아니라 그 텍스트가 나오게 된 배경이라든가 그 텍스트를 만든 사람의 의도도 명확히 이해해야 합니다. 즉 텍스트 바깥의 의미도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능력도 날이 갈수록 퇴보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가 갈등이 매우 심하며 소통이 되지 못하고, 소통의 측면에서 고비용저효율의 사회가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가 저는 한국 인문학 교육의 치명적인 부실함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방송과 언론도 일종의 텍스트입니다. 여기에도 엄밀한 인문학적 텍스트 비평과 텍스트 교감이 필요합니다. 가짜 뉴스가 흘러넘치는 요즘, 방송과 언론은 교묘하게 국민을 속이고 있습니다. 힘들더라도 각 언론사와 방송사의 기본적인 논조를 명확히 파악해야 합니다. 같은 정보를 각 방송사와 언론사에서 어떻게 다르게 보도를 하고 있는지 엄밀하게 비교 검토해보아야 합니다. 기자들의 개인적인 성향도 잘 파악해야 합니다. 그 기자가 어떤 경력을 지니고 있으며, 정치적인 성향이 어떠하고, 과거에 어떠한 오보를 쓰거나 오도를 한 경우가 없는지 꼼꼼히 확인해보아야 합니다. 게다가 해당기사의 원 출처와 쏘스도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이런 저런 텍스트의 안팎을 꼼꼼히 살피고 나서 신중하게 정보를 받아들여야만 합니다.
사람들 대부분은 자신이 언어를 조종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 대부분은 세상의 언어에 의해 조종당하고 있습니다. 탁월하게 현명한 사람도 여기에서 벗어나기 어렵습니다. 세상의 언어를 조종하는 사람들은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자들입니다. 지금 세상을 지배하는 권력은 정치권력도 아니고, 군사 권력도 아니고, 학문 권력도, 종교권력도 아닙니다. 그들의 위에는 국제화된 절대 자본권력이 있습니다. 특히 대부분의 방송사나 언론사가 자본권력의 광고후원을 받으며 독자보다는 그들의 눈치를 보면서 자본권력을 옹호하고 친화하는 기사들을 대량 생산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본권력에 대항하는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우호적이지 않고 매우 까탈스럽습니다.
방송과 언론의 기사를 온전히 이해하기 위해 모두가 인문학 공부를 충실히 하라고 주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가짜정보와 유사정보가 흘러넘치는 시대에 언론과 방송 기사를 이해하기 위해 비판적인 시선을 잃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함석헌 선생이 말했습니다.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고.